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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경제 껍질깨기-132] '현 인류는 어떻게 (지구를 지배하는)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을까? 인간의 대규모 협력은 공통의 신화에 뿌리를 두고 있고 그 신화는 집단적 상상 속에 존재한다. 인간이 갖는 가장 독특한 특성은 신화와 같은 허구(fiction)를 만들어 내고 이 허구를 통해 집단적으로 협력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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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 역사를 태생에서부터 현재까지 과학사적인 관점에서 서술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사피엔스'의 저자인 유발 하라리 교수는 인간이 세상을 지배하게 된 이유로 '허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을 꼽았다. 인류는 역사적으로 수많은 허구를 만들었고 이 허구를 집단적으로 신뢰했다. 허구는 집단의 힘을 응집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발휘했다. 힘도 없고 자연에 대한 적응력도 약했던 인간이 지구를 지배하는 이유는 동물들 중 유일하게 허구를 통한 사회적 단결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태초에는 신화라는 허구가 있었고 이후 종교, 정치제도 등이 있었다. 허구에 기반을 두어 국가를 비롯해 사회, 법, 제도 등이 만들어졌다. '자본주의'라는 이데올로기도 마찬가지로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다.

 자본주의는 18세기 산업혁명이 발생할 시점에 인간들이 만들어낸 이데올로기다. 자본주의 이전에는 봉건제가 있었고 그 이전에는 노예제가 있었다. 모두가 각 시대에 처한 상황에서 인간이 최적의 허구를 만들어낸 결과다.

 

새로운 신화 2.jpg

 

 산업혁명 이후에는 자본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인간이 집단적으로 신뢰했고 이를 통해 강한 응집력을 발휘해 사회를 발전시켰다. 자본주의는 제조업 위주의 대량생산 체제에서 생산력을 극대화하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모든 사람에게 열심히 일을 하면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줬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부자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 다양한 논리와 현실적인 근거를 들어 설명했다. 시장이라는 것을 발전시켜 많은 사람이 일정 규칙에 따라 교환하게끔 함으로써 낭비를 줄였다. 자본주의 아래서 개인들은 자신들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 사회적 생산력을 높였다. 기업 경영자와 오너들은 근로자를 효율적으로 조직해 집단적인 생산성을 끌어올렸고 근로자들은 소득을 얻어 부자가 되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

 19세기에 인간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지적하는 '사회주의'라는 또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만들기도 했지만 자본주의가 이끌어내는 집단적인 힘이 더 컸다. 자본주의 경제학이 제시하는 각종 경제원리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하나의 사회 법칙으로 인식하도록 만드는 데 큰 기여를 했다. 각종 수학과 자연과학 원리를 경제 현상에 적용해 '수요공급의 원칙'을 비롯해 '시장 메커니즘이 효율적인 자원배분을 달성한다'는 후생경제학 원리까지 다양한 자본주의 법칙을 만들어 냈다. 자본주의에 입각한 각종 사회 및 정치제도와 국가 형태도 생겨났다. 모두가 개인의 힘을 하나로 모아 사회 전체적인 힘을 향상시키는 동력으로 작용했다. 고대 사회에서 특정 신을 믿는 부족들이 똘똘 뭉쳐 다른 부족들을 몰아내고 거대한 제국을 형성하는 과정과 비슷하다.

 하라리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본주의 법칙들은 실재하는 것은 아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구름이 모이면 비가 내리는 것은 자연에 실재하는 현상들이다. 반면 '수요가 늘어나면 가격이 올라간다'는 것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관념 속에 존재하는 만들어낸 허구에 해당한다. 허구는 사회집단이 여기에 동의하고 이를 받아들일 때만 효과를 낼 수 있다. 사람들이 인정하고 신뢰하지 않는다면 하나의 허구는 다른 허구로 대체된다. 봉건제가 자본주의로 바뀐 것도 비슷한 경우다.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4차 산업혁명은 그동안 사회 집단의 의식을 지배해왔던 자본주의 원칙들에 대해 여러 가지 의문점을 노출시켰다. 4차 산업혁명으로 생산력이 급속도로 발달하면 수요가 늘어난다고 가격이 떨어지지 않는다. 또 경제가 성장한다고 해서 고용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가격 메커니즘이 효율성을 담보해주지 않는다. 이런 현상들은 자본주의가 제시하는 것과 모순되는 실재 상황들이다. 허구가 실재와 정확히 일치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허구에 반하는 사례들이 계속 늘어난다면 허구는 사회집단을 응집시키는 수단으로서의 위치가 흔들린다. 허구의 위치가 흔들리면 인류는 또 다른 허구를 만들어 사회 집단적인 힘을 극대화하려고 시도할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 될지는 섣불리 예측하기 어렵다. 다만 지난 역사를 돌이켜볼 때 그것은 기존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또 하나의 허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봉건제가 자본주의로 대체됐듯이 자본주의는 포스트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무엇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포스트 자본주의는 4차 산업혁명으로 촉발되는 각종 경제·사회현상들을 포괄적으로 설명하고 앞으로의 비전을 제시해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인류의 과거를 볼 때 미래는 다소 낙관적이다. 사피엔스의 가장 큰 능력은 현실을 반영할 수 있는 허구를 만들어 내고 이 허구를 통해 집단적인 힘을 극대화하는 데 있었다. 이런 사피엔스의 역사가 다시 한 번 반복돼야 할 시점이다.

출처 : 2016.05.03 [노영우 지식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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